“‘내가 성공하면 나눌 거야!’ 라는 생각은 바꿨으면 좋겠어요. 성공의 기준이 뭘까요? 하버드 대학교를 가면 성공한 건가요? 삼성전자에 들어가면 성공한 건가요? 지금부터 나눌 수 있어요. 누구나요.”

BT&I그룹 송경애 대표의 말이다. 송 대표는 여행기업 BT&I의 창업자다. 그는 1987년 자본금 250만 원의 작은 여행기업으로 시작해 매출 3천억 원대로 성장시킨 벤처기업계의 성공 신화다. 2012년 BT&I는 SM C&C와 합병해 송 대표는 SM C&C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SM C&C에서 한류와 여행을 연계한 엔터테인먼트 MICE(Meetings, Incentives, Convention, Exhibition) 사업을 이끌었다. 이후 2016년 SM C&C에서 MICE 사업을 분리해 BT&I그룹을 만들었다. 현재는 기업출장관리서비스, VIP 전문, VIP여행 컨시어지 서비스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송 대표는 어렸을 때 미국에서 살았다. 청바지도 못 입게 하는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에게 ‘딴 짓 못하게 빨리 결혼시키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송 대표는 그러려니 넘겼지만, 실제 청첩장이 눈앞에 나오자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짐을 싸고 무작정 한국으로 나왔다. 한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는 도착하자마자 일단 신라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시간이 흐르자 돈도 점점 떨어지고 막막한 현실에 송 대표는 호텔 로비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본 한 신라호텔 직원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정을 들은 직원은 송 대표에게 호텔 VIP 코디네이터 자리를 제안했다. 그 운명적인 사건이, 송 대표가 여행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가 됐다.

송 대표는 신라호텔에서 일하다 외국인을 위한 전문 여행사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 사업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1987년, 외국인 전용 여행사 이태원 트래블 서비스(ITS)가 탄생했다. 당시 송 대표는 27세였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여자라서 당한 수모도 많았다. “저 여자가 사장이 아닌 것 같은데. 뒤에 누가 있는 거 아냐?”라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직원이 10명도 안 됐던 작은 회사를 3천억 원대의 중견기업, BT&I로 키워냈다. 그렇게 그는 여행업계의 대표 CEO로 우뚝 올라섰다.

이제는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40세 때, 남편과 함께 ‘이제는 남을 도우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변하지 않았다. 1억 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여성 1호로 가입하고, 많은 사람들을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시켰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나눔위원장도 맡고 있다.

최근 아프리카 빈곤국가 말라위의 어린이들을 위해 축구장을 선물했다. 이제 송 대표는 물도 마음대로 버리지 못 한다. 나보다 어려운 이들이 눈에 아른거려서다. 나눔은 곧 나를 위한 것이라는 송 대표. 나눔을 하면서 기쁨을 느낀다는 송경애 대표와 만나 그의 가치관을 들어보았다. 송 대표의 기업가로서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1문1답.

– 최근 말라위에 축구장을 선물하셨다고요?

2년 전 말라위 아이들이 한국에 방문했었어요.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말라위에 축구장이 없대요. 아이들에게 언젠가 축구장을 해주기로 약속했죠.

그런데 남편이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말라위 축구장을 해줬어요. 축구장 오픈식에 참여할 겸 말라위에 다녀왔죠. 축구대회도 열었어요. 아이들이 뛰노는 것도 꿈과 희망을 펼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빈곤 마을도 함께 돌아봤어요. 먹지도 못하고, 교육도 못 받는 아이들을 보니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이들에게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빈곤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고민이 많아요. 말라위를 갔다 오고 나서 우물을 지원하는 사업을 돕고 있어요.


지난 7월 말라위에 다녀온 송 대표. 제공: BT&I 그룹

– 이들을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근본적으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봐요. 문제는 얼만큼 시간이 걸리냐는 거죠. 언젠가는 되리라고 믿어요. 한국도 옛날 선교사가 와서 도운 것처럼, 해외의 어려운 빈곤국을 도왔으면 좋겠어요.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예요.

– 말라위를 다녀오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말라위 다녀오니까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워낙 어려운 친구들을 보니까. 아들이 생수병 반을 남겨두고 새로운 물을 뜯으니까 저도 모르게 “물 아깝게 왜 새로 뜯니!”라고 타박을 하더라고요. 이렇게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지네요.

이번 말라위를 다녀오고 나눔이라는 건 내가 살아있는 존재, 라는 걸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됐어요. 앞으로도 내가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앞으로 명품을 사거나 그런 건 더욱 힘들 거 같아요. 더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쓰고 싶으니까요.

– 원래는 기업가였는데, 어떻게 나눔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나요?

마흔 살 생일 때 남편과 이제는 좀 남을 위해 살아보자,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기부도 하고는 했죠. 그러던 와중,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에 여성기업인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여성기업인 1호 아너소사이어티가 됐죠. 그때 스무 명 남짓이었는데 지금은 무려 1700명 규모에 여성은 400명으로 커졌어요. 제가 가입도 많이 시켰죠. 아,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 참 좋구나, 라는 걸 느꼈죠.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해요.

또, 아너소사이어티에서 여성들만 모인 ‘W아너 소사이어티’도 만들었어요. 이를 통해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주려고 해요.

– W아너 소사이어티은 무엇을 하는 단체인가요?

여성들로 인한, 여성들을 위한 모임이에요. 다문화 가정, 미혼모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요. 현재 논의 중이죠. 우리가 모인 것은 나눔 문화를 퍼뜨리고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와 400명의 목소리는 다르니까요.

각 지방에 리더를 만들었어요. 이 문화를 알리고, 우리가 나서서 봉사활동도 하고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앞장서는 거죠. 1억 이상 기부한 여성들이 모여 나눔 문화를 알리는 모임은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가 처음이에요.

– 이렇게 나눔을 활발히 하는데, 정말 뿌듯한 순간이 있다면요?

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나눔위원장이에요. 그런데, 어린이재단에서 지원해온 강민성 선수가 이번 아시안게임 태권도 품새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어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이리더’로 선발돼 재능을 키워온 선수예요. 정말 어찌나 기쁘던지요. 눈물이 막 났어요. 박상영 선수도 지원을 받았는데, 펜싱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냈어요. (인터뷰 당시 8월 20일)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죠. 그래서 세상은, 그래도 살만해요. 지옥 같을 때도 있지만요.

– 송 대표의 나눔에 대한 가치관을 설명한다면?

나는 기부라는 말을 싫어해요. 마치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준다는 느낌이 들어요. 대신 나눔을 써요. 나눔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았을 때 친구들에게 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죠. 나눔의 기쁨은 결국 나에게 돌아와요.

나눔은 누구를 나무라면서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너 왜 안 해?’라거나 ‘나는 대단해!’ 라는 생각하면서 나누는 것은 좀 아니죠.

‘내가 성공하면 나눌 거야!’ 라는 생각은 바꿨으면 좋겠어요. 성공의 기준이 뭘까요? 하버드 대학교를 가면 성공한 건가요? 삼성전자에 들어가면 성공한 건가요? 지금부터 나눌 수 있어요. 누구나요. 솔직히, 커피 한 잔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면서, 만 원 기부하기는 어려울까요? 이런 적은 돈을 아껴서 기부할 수 있어요. 정말 절박한 분 아니면 사실 할 수 있다고 봐요. 마음만 있다면요. 그냥, 지금부터 하는 거예요.

– 나눔에 대한 가치관을 만드는 데 가장 영향을 주신 분들을 꼽자면?

부모님이에요. 우리 부모님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을 전혀 아끼지 않았어요. 워싱턴에 살 때 종종 모르는 사람들이 집에 찾아왔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은 어머니가 자기 어렸을 때 장학금을 줬었대요. 그래서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거예요. 그때 저는 “왜 기부해? 차라리 나한테 줘!”라며 불만이 많았었죠. 그런데, 그런 부모님의 모습이 저에게도 스며들었나 봐요. 부모님이 나누는 것을 보고 자라니 나도 똑같이 하고 있었어요. 저도 아이에게 똑같이 가르쳐요.

– 이제는 기업인 송경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인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해야 한다고 보나요?

기업이 성공할 때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 희생이 필요해요. 기업의 성공은 혼자 만들어내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거죠. 마치 자식이 태어나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처럼요.

– BT&I가 하는 CSR활동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이들을 돕는 비영리단체를 돕고 있어요. 비영리단체가 해외에 물품을 보낼 일이 있을 때 서비스 요금을 거의 안 받아요. 세금 부분만 받고요. 우리 회사가 가진 강점을 이용하는 거죠. 우리 회사는 여행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또, 전 직원과 함께 1%기부를 했어요. 자기 월급의 1%를 기부하는 거죠. 또, 회사에서 해외 빈곤 아동 5명을 후원하고 있어요.

– 1987년, 27살 때. 이태원 여행사를 차렸죠. 그때 당시 사회 분위기상 여자가 창업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힘든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올림픽 지나고 나서 차를 하나 샀어요. 그때는 직접 티켓을 배달해줬어야 했죠. 그때 “너는 여자가 운전을 해?”부터 “집구석에 있지 왜 기어나와서”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여자 사장이라고 하면 “뭐야 네가 사장이야?”라는 말도 많이 들었었죠.

여자 혼자가 아니라, 뒤에 누가 있나? 라는 선입관도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저녁에 남자랑 절대 둘이서 밥을 먹지 않아요. 예전에 호텔 매니저와 호텔 커피숍에서 계약 미팅을 하고 나왔는데, 나오면서 아버지 친구를 만나 난리가 난 적도 있어요. 나쁜 얘기도 많이 들었죠. 그런 오해를 받기가 너무 싫었어요.

접대 문화도 싫어요. 어차피 나는 술도 못먹고 골프도 안 쳐요. 난 비즈니스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술을 사본 적도 없어요. 설사 내가 그만큼 성공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스타일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무언가까지 팔면서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 가치관은 절대 버리지 않았죠. 누구 나랑 밤 늦게까지 둘이 술 먹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웃음)

– 한국 사회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대신 무엇으로 승부했나요?

당연히 서비스죠.

미국에서 온 나는 아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한국은 아는 사람 없이 뚫고 들어가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외국회사를 대상으로 했죠. 한 회사에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면, 그 회사는 다른 회사에 우리를 추천하죠. 그렇게 성공시켰습니다.

골프 치면 밥을 먹고, 술을 먹어야 해요. 그런 것, 안 합니다. 내가 일을 그만두는 그 날까지 이 가치관은 변하지 않아요. 직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직원들에게 굳이 술을 먹어가면서 거래처를 따오라고 하지 않아요. 나도 안 하는데 직원들을 시킬 수는 없잖아요. 뭐, 힘들었죠. 반발도 있었고. 얼마나 깨끗하면 그러냐, 네가 잘났어? 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요.

– 최근 대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한 기업의 대표로서 이런 갑질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그런 걸 보면 안타깝죠. 다른 행복이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더 좋지 않나요. 사람에게 귀천이 있나요? 나와 기자님도 다를 게 하나도 없잖아요. 다 같은 인간인데.

우리 집에 가사도우미가 온다고 해보죠. 그 사람은 그냥 가사도우미를 직업으로 가진 전문가고, 나는 그 서비스를 받는 대신 돈을 주는 그런 깔끔한 관계예요. 거기에서 무슨 권력관계가 있어요. 나는 전문가로 여기고, 그분은 그저 일하는 거고. 눈치 보지 말고, 떳떳하게 살았으면 해요. 누군가의 자존감을 누르지 말고, 살려줘야 해요. 다 같은사람들인데, 왜 그 사이에서 아등바등할까요. 잘못됐어요.

– 앞으로는 어떤 활동에 집중할 계획인가요?

최근 여기저기 다니면서 우리 회사에서 오래 있었던 직원들을 돕고 있어요. 우리 회사에서 10~15년 동안 일했던 직원들의 창업을 돕는 게 요즘 내 목표입니다. 1년 동안 도와주고 나는 손 떼는 거죠.

이게 바로 일자리 창출 아니겠어요? 내가 오너로서 이 사람들을 계속 데리고 있으면 이들은 그냥 직원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독립을 시켜주면, 사장을 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어요.

여행 관련 콘텐츠, 티켓팅, 이벤트 그런 사업들을 많이 해요. 계열사도 아니에요. 본인들에게 주식도 다 넘겨줘요. 나는 이들을 사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나와 함께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줬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요.

이런 게 진정 하고 싶은 일,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창업하는 애들을 돕는 게 가장 관심 있는 일이죠. 그래서 나는 월급 1원도 안 받고 일해요. 나의 것을 늘리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게 더 좋아요. 큰 보람인 거 같아요.

–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있다면?

긍정이죠.

몇 년 전 동생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동생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언니, 잇츠 오케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동생이 가르쳐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요. 이제는 나도 습관처럼 잇츠 오케이, 잇츠 오케이 하고는 하죠. 그거를 동생한테 배웠어요. 왠지 그 다음부터 화가 잘 안 나요. 숨을 한 번 들이마쉬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는 거죠. 그 전에는 인간이 어떻게 저래? 라며 화를 냈었는데 말이죠.

– 최근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한 마디 해주자면?

늘, ‘뭐 어때?’라고 생각하고 사세요. 내 끝이 여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야 매달리지 않아도 돼요. 만약 직장인이라면, 퇴사라는 옵션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뭐가 그렇게 대단해요, 회사가. 안 되면 나오면 돼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마세요. 얼마나 세상이 넓은데요. 젊은데 뭐가 모자라요?

출처 : 미디어SR(http://www.mediasr.co.kr)